2019년 11월 20일 수요일. 날씨는 구름 잔뜩 낌
오늘은 로스 페로스를 떠나 그레이 캠핑장까지 가는 날,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오늘이 가장 난이도가 높았다.
(1,200미터로 O 서킷 중에 가장 높은 구간을 통과하는 날)
새벽부터 출발하는 트레커들을 보면서 우리도 짐을 서둘러 챙겼다.
7시간 정도 소요되는 20Km 거리.
출발 시간은 아침 7시 40분
하늘이 불안불안 하더니 드디어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춥지 않았으면 하는 조바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이한 숲길과 언덕을 오르자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이 우릴 막아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회하는 길이 있는 줄 알았다.
빨간색 봉이 꽂혀있는 길만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가면 생각했고 설마 했다.
빨간 봉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니 저 눈 덮힌 구간을 트레커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다. 바로 눈 내리는 설산을 통과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른바 요한 가드너 패스
일단 눈길에 대처할 수 있는 겨울용 등산도구들이 없었다. 즉 등산화에 감는 체인조차 준비가 안됐었다.
하지만 앞으로 가는 수 밖에 없었다.
내려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사람다닌 흔적들이 있었지만 중구난방이었고 무엇보다도 경사가 제법 가파른 내리막길에 눈이 무척이나 미끄러웠다.
미끄러지면 어디로 굴러 떨어질지 모르는 높이였으니.
등산 폴(스틱)을 눈속에 단단히 박고 한발 한발 내딛고 그렇게 하산했다.
무척이나 다행이도 아무 사고 없이 눈 덮인 구간을 마칠 수 있었다.
그 보상이었는지 '그레이 빙하'가 눈에 들어왔다.
숨이 턱 막히는 순간.
발길을 그레이 캠핑장으로 계속 움직였다.
그레이 빙하를 더 잘 볼 수 있는 지점이 곧 나오기 때문이다.
파소 캠핑장을 지나쳐 어느 곳에 다다르니 그레이 빙하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나왔다.
그레이 호수의 어원이 되는 이 빙하는 애초에 넓이만 6km, 높이가 30m에 이르는 하나의 커다란 빙하였다고 한다. 온난화로 앞단의 갈라져서 두개로 나눠졌는데 계속 빙하의 면적이 줄어들고 있단다.
그레이 빙하를 보면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얼음덩어리를 오른쪽에 두고서 무난한 숲길을 걸으니 드디어 등장했다.
길이가 40여미터나 되고 높이는 가늠이 되지 않는 그리고 아주아주 간단한 현수교가 등장했다.
다리를 걷는 동안 현기증이 날뻔 했고 너무나 아찔해서 사진 찍을 용기도 나지 않았다.
가슴 조마조마한 구간을 거쳐서 다시 숲길을 거쳐서 그레이 빙하를 눈에 담고서 또 출발한다.
주워 들은바로는 저 아찔한 다리가 한번 더 나온다.
그 다리는 바로 나왔다.
다행인게 아까보단 더 짧고 높이도 낮다. 하지만 그래도 어마무시한 높이와 건너와야 하는 길이였다.
그렇게 숲길을 헤치며 걷다보니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 그레이 캠핑장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은 오후 5시 40여분.
체크인을 하고서 텐트를 치니 벌써 여섯시가 다되간다.
햇살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시간에 젖은 옷가지들을 말려본다.
토레스 델 파이네 W 써킷의 출발점이어서 그런지 여긴 공간도 넉넉하고 그래서 그런지 트레커들도 어제와는 달리 북적이는 수준이었다.
오늘은 예상치 못한 모험과 쫄깃함을 만끽한 하루였다.
고된 몸을 뉘면서 하루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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